Friday, September 9, 2011

허영무 이야기


스타1이나 2이나 게임 플레이를 멈춘 것은 물론이고 리그 중계도 그만 보기 시작한지 꽤 되었고, 개강 초부터 이런 저런 데드라인에 치여 정신 없는 와중이지만... 정말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스타리그 4강 허영무 vs 어윤수를 보았다. 오랜만에 보는 것임에도 감동에 눈물이 찔끔;

허영무가 가장 물이 올라 MSL 4강에 올랐을 때, 지금까지도 프로토스 최강자 중 하나인 송병구를 같은 수 같은 유닛 컨트롤 싸움에서부터 압도하며 씹어삼키는 것을 보고, 이제 손 느린 게이머의 시대는 여기서 끝이로구나 하며 개탄했던 기억이 난다. 그 때의 허영무는 별명처럼 정말 '올마이티' 해 보였다.

허나 내 설레발과는 달리 손 느린 게이머의 대명사인 송병구는 그 이후로도 꾸준한 성적을 낸 반면 허영무는 그렇게 올라간 결승에서 박찬수에게 3:1로 패하고 나서는 언제 그렇게 잘했냐는 듯이 바로 기나긴 슬럼프에 빠지고 말아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. 사람들은 '허필패' '패왕사신기'라며 조롱하기 시작했고, 이미 거듭된 패배로 상심했던 어린 게이머는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들과 설전을 벌이는 등 심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.

그러던 허영무가 MBC 게임 방송이 없어지고 3개의 프로팀이 해체되는 스타리그 최악의 지금 이 순간 과거의 상처들을 극복하며 '예선 와일드 카드 - 16강 재경기 - 8강 독보적 랭킹 1위 이영호와의 대결 - 4강 대 토스전 승률 1위 어윤수와의 대결' 을 걸쳐 다시금 결승에 오른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뭉클하다.

드라마틱하게도 허영무가 결승에서 만나는 상대는 SKT1의 정명훈. 최근 경기는 별로 보지 못했지만 프로토스전에 있어서라면 이영호에게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가, 군 입대를 앞둔 최연성 코치와 정명훈-최연성 콤비의 마지막 결승으로서의 투지를 불태우고 있으니 나는 여전히 허영무가 이길 거라는 예상이 되지 않는다.

하지만 허영무가 다시 한 번 결승에서 패하더라도 나는 그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. 그는 이미 아무리 절망적인 슬럼프에 빠지고 나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몇 번이고 회복할 기회는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. 그래, 언제든 다시 일어서고 내가 있던 그 위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. 그렇게 몇 번이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한 발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을 테니까.

대학원 생활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. 한국을 나와 보니 세상이 참 넓고 잘 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,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나의 심성이 너무나도 유약하다, 이런 좌절감들에 자꾸만 마음이 흔들린다. 하지만 간만에 튼 스타리그에서 허영무가 럴커 밭에 스톰 뿌리는 모습을 보며 '그래, 나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 다시 저렇게 할 수 있겠구나',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나도 좀 쑥스럽고 우습긴 한데, 정말 그런 위안을 받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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